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해찬 세대 (문단 편집) == [[의도는 좋았다]] == 교육부의 방침으로 학생들은 보다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학습했으나 문제는, 본격 도입된 [[수시]] 전형[* 수시전형 혹은 그와 유사한 제도는 1997년 김영삼 때 생겼고, 2002학번 때에 본격적으로 정형화되어 시행되었다. 포항공대는 도입 첫 해인 1997년 부터 서울대는 1998년부터 이미 현재의 수시제도와 유사한, 학생부 위주의 고교장추천전형을 실시하고 있었으며("서울대 60년사" 참조) 연세대 역시 2001학년도 입시계획에서 수시모집으로 정원의 30퍼센트를 뽑는다고 명시하고 있었다.]으로도 '''특기 하나만 잘 하면 대학에 가는 제도변화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'''는 것이다. 오히려 이해찬 1세대가 응시한 2002학년도 [[대학수학능력시험]]이 이전 몇 년과 비교했을 때 가장 어렵게 출제됨으로써 학생들의 점수가 폭락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. 소위 '''불수능'''으로 인해, 수학능력시험 끝나기 무섭게 '''[[혼돈의 카오스]]'''가 눈앞에 펄쳐졌다. 논술준비고 면접이고 뭐고 당장 원서를 넣어야 하는데, 도무지 어디다가 원서를 넣어야 될지 모르겠는 상황이 닥쳤다. 수능 성적이 좋든 망쳤든간에 그 해 수능을 봤던 모든 학생들이 말이다. 이 때 수능은 400점 만점이었는데 모의고사 대비 100점 넘게 떨어진 학생들도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었다. 이런 학생들이 자살을 했다거나, 자살 소동을 피웠다 거나 하는 말이 꽤 많이 오고 갔다.[* 남자 같은 경우 졸업식에 안 나오거나 소식이 끊기면 '''자살한건지 군대 간건지 몰랐다.'''] 원서를 쓰기 위한 모든 자료 및 데이터를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정말로 현실에서 펄쳐졌고, 결국 학생들은 혼돈의 상황 속에서 안전을 추구하며 하향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. 이 결과로 일어난 하향지원은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. 2011 수능이나 2017 수능처럼 자기가 평범한 수능에서 갈 수 있는 라인보다 한두 단계 떨어진 정도면 그러려니 해도, 서울대가 인원이 남아돌 정도의 미친 하향지원이었다.[* 당시 미등록률이 '''13.4%'''였다고 한다. 정상적이라면 미등록률 0%는 물론이고, 가고 싶어도 경쟁자들이 너무 강하고 많아서 못 갔을 텐데 말이다.] 수능점수 때문에 너무 쓸 데가 없어서 미친 척하고 서울대를 넣었는데 인원미달로 합격통지서를 받은 놈이 있다는 소문[* 2002년 당시 서울대는 정시 최저학력요건(총점 1등급 혹은 총점 2등급 중 2개 영역 이상 백분위 97 이상)이 있어 설사 미달이 나도 그 이하 성적은 붙을 수 없었다. 미친듯한 하향지원으로 인해서 '쓸 수는 있지만 평소라면 붙을 수 없는 다소 낮은 성적'으로도 붙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. 몇몇 서울대 학과는 지원자가 너무 없어서 심각한 문제가 됐었다.]이 돌 정도로 하향지원이 심각했다. 상당수 학생들이 미래의 진로에 큰 혼선을 빚었고, 입학 후 자신이 왜 여기 와야 했는지 모르겠다는 동기를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었다. 하향지원한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재수생의 길로 들어서거나 일단 학교 써 놓고 [[편입학]]을 알아 보는 사람도 많았다. 남자같은 경우 그냥 군대 간 케이스도 많았다. 심지어는 당시 서울대 수시 합격자의 수능 커트라인은 340점 정도였는데, 그동안 서울대로 원서를 내온 학생들은 380~390점대 이상으로 점수를 받는 사람들이었다. 서울대 등 명문대에 갈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 단지 남들 점수 하락 폭 만큼만 점수가 떨어졌을 뿐인데 불합격을 받은 것이다. 그 어떤 교사도 이런 결과를 예상 못 했기에, 수시에 합격하고 놀던 학생들은 망하고 말았다. 게다가, 이로 인한 여파는 2003년 이후에도 한동안 남아있었다. 이 뒤 몇년간 수능은 재수생들의 강세였는데, 특기 한가지만 잘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분위기 아래 공부한 것은 당시의 고등학생들 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. 이 정책이 발표될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~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 중에서는 교육부의 그 말만 믿고 상대적으로 이전 세대보다 느슨하게 공부를 시켰는데, 후에 입시정책 등을 알아보니 그게 아니라서 뒤통수를 맞은 이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. 그리고 이 2002년도 수능 이후 몇 년간 수능 본 학생들은 해놓은 공부가 없는 데 해야 될 공부는 자비심없이 많아지는 상황이 닥쳤다. 게다가 '''이 뒤 수능들의 난이도도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.'''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